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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

중남미여행 / 와하카, 강렬한 햇살의 기억

다시 멕시코시티행 버스를 탔다. 와하까(Oaxaca)로 가기 위해선 그곳을 거쳐야 하니까. 과나후아토에서 멕시코시티를 경유하여 와하카에 당도하기까지 1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도시와 도시를 옮겨 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풍경을 뒤로 흘려보내야 했다.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 이 여행길에선 내 몸에 익숙한, 시간에 대한 관념을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짧은 시간 단위에 연연하는 태도로는 아마도 광막한 이 대륙에서 배겨 내지 못할 것이다.

 

 

 

 

 

새벽녘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잠깐 넋을 놓은 사이 내릴 곳을 지나친 듯했다. 당황해서 주변의 승객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스페인어로 말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청년이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는데 본인도 영어를 그리 잘 하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와 같이 내리더니 맞은편에서 버스를 타라고 일러주었다. 그런 뒤 뭔가를 쪽지에 적어 건네주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거기엔 폰 번호와 함께 '구스타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와하까의 햇살은 강렬하고 뜨겁다. 뜨거운 햇살 아래 조금만 걸어도 살이 익을 것만 같다. 와하까에 도착해 숙소부터 잡았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볕이 너무 뜨거워 그늘만 찾아다녔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모양인지 거리에서 그늘이 있는 인도 안쪽으로 바싹 붙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요르도모(Mayordomo)라는 초콜릿 상점에 들러 초콜릿 음료로 목을 축였다. 마요르도모는 와하까에서 유명한 초콜릿 체인점으로 음료도 팔고 초콜릿도 판다. 인기가 좋아 이곳을 찾는 손님들로 늘 붐빈다. 와하까 사람들의 초콜릿 사랑이 남달라서인지 요리에 쓰는 소스에 초콜릿을 넣기도 한다. 멕시코의 전통 소스인 몰레(mole) 중에서도 초콜릿이 들어간 몰레 네그로(mole negro)는 와하카에서 꼭 맛봐야 할 별미로 꼽힌다. 어떤 재료가 첨가되느냐에 따라 몰레 종류도 다양하며, 대부분 커리처럼 밥이나 고기 등에 곁들여 먹는다.  

 

 

 

 

 

다양한 군상을 엿볼 수 있는 시장 구경은 언제나 쏠쏠한 재미를 안겨 준다. 골목마다 전통 의상과 공예품을 파는 가게와 갤러리가 많다.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원주민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걸 체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와하까는 인구가 3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소도시지만 원주민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다.

 

 

 

 

 

스페인 지배 당시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과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건물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표적인 건축물의 하나인 산또 도밍고 성당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온통 금붙이로 화려하게 치장된 내부를 보며 당시 공사를 주도한 이들이 과시적인 성전 건축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을지 짐작해 본다.

 

 

 

 

 

인근의 작은 교회 안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매연을 내뿜는 차들과 행인,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의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시간마저 정지되어 있는 느낌. 그냥 이대로 머물 순 없을까. 모든 걸 잡아놓은 채로.